청와대 주변 지역이 역사서에 처음 기록된 것은 고려 숙종 때인 1104년 무렵입니다.
고려는 개경(지금의 북한 개성)과 함께 서경(평양), 동경(경주)을 삼경으로 두었는데 숙종 때 동경 대신 청와대 주변으로 추정되는 곳에 이궁(離宮)을 설치하고 남경으로 삼았습니다.
남경은 ‘남쪽의 서울’이란 뜻입니다.
이궁(離宮)이 있던 자리경복궁 완성
청와대 주변 지역에 대한 기록은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여 도읍 이전을 논의하면서 다시 나타납니다. 1394년 관료들은 고려 숙종 때 이궁 자리가 새 궁궐 자리로 좁으니 더 남쪽으로 내려가서 짓는 것이 좋겠다고 보고했습니다. 태조는 그해 12월 궁궐을 짓게 하여 이듬해 9월에 경복궁을 완성했습니다. 임진왜란 이전까지 조선의 왕들은 대부분 경복궁에서 거처하였고, 지금의 청와대 일대에서는 왕과 신하가 함께 모여 천지신명에게 제사를 올리며 충성과 단결을 맹세하는 회맹의식이 비정기로 개최되었습니다. 『실록』 등에 나오는 이 시기의 경복궁 후원(금원 또는 상원으로도 불렸음)은 오늘날 청와대와 가까운 경복궁 북쪽의 담장 안쪽에 있었습니다.
경무대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경복궁은 완전히 폐허가 되어 약 270년 동안 방치되었다가 고종 2년(1865)에 중건되었습니다. 이 때 경복궁 신무문 밖 지금의 청와대 지역에 다양한 용도의 건물이 세워졌습니다. 이 지역에는 1868년부터 과거시험장의 기능을 하던 융문당, 군사훈련을 하던 융무당을 비롯하여 오운각, 옥련정, 경농재 등이 차례로 들어섰습니다. 1869년부터 융문당, 융무당 일대가 경무대로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일제강점기 이후 1929년에 조선총독부가 통치 20주년 기념으로 조선박람회를 경복궁과 경무대 터에서 개최하면서 대부분의 건물이 철거되었습니다. 1929년 조선박람회가 끝난 후에는 한동안 넓은 공터로 남아 있었고, 일제는 1939년 이곳에 조선 총독의 관사를 지었습니다.
경무대에서 청와대로
1945년 광복 후에 총독 관저 건물은 미군정 사령관의 관저로 사용되다가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 정부에 인계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이승만 대통령 내외가 이화장에서 경무대로 거처를 옮기면서 건물 1층을 집무실, 2층을 관저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본관을 비롯하여 이곳은 옛 지명에 따라 경무대로 불렸으며, 대한민국 국정(國政)의 중심 공간이 되었습니다. 1960년에 취임한 윤보선 대통령은 경무대라는 명칭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좋지 않다고 하여 1961년부터 본관 건물의 지붕이 청기와로 덮여 있다는 의미에서 이름을 청와대로 바꾸었습니다.
전면 개방
박정희 대통령 재임 시기에는 경제성장과 함께 청와대 비서 기능과 기구가 확충되었습니다. 이후 건물의 보수·증축과 함께 영빈관 및 상춘재 신축 등 청와대 경내에 많은 구조 변화가 있었습니다. 노태우 대통령에 이르러 우리나라의 위상과 민주주의 시대에 어울리는 밝고 진취적인 청와대를 새로 짓기로 하여 1990년 현재의 관저와 춘추관, 1991년 본관이 신축되었습니다. 1993년에는 김영삼 대통령의 지시로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구본관 건물이 철거되었습니다. 이후 본관에서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대통령이 집무했습니다. 2022년에 취임한 윤석열 대통령이 집무실 및 관저를 이전하면서 청와대 공간이 국민에게 전면 개방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