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촌과 북촌은 조선 시대에서 근대까지 예술가들의 주요 활동 무대였습니다. 조선 후기 겸재 정선과 추사 김정희부터 고희동, 오세창, 안중식 등 우리 근대 화단을 이끈 화가들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이런 전통은 현재까지 이어져 서촌과 북촌 구석구석에 개성 있는 갤러리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 도보 기준
K-근대아트 코스의 출발은 종로구립 박노수미술관입니다. 광복이후 한국 화단을 대표하는 화가 중 한 명인 박노수 화백(1927~2013)의 자택을 기증받아 그의 작품을 전시하는 미술관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미술관은 건물 자체의 가치를 인정받아 서울시 문화재자료(옥인동 박노수 가옥)로 지정되었습니다. 한국화에 뿌리를 두면서도 강렬한 색감과 과감한 터치가 인상적인 박노수 화백의 작품은 전통 속에서 현대적 미감을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박노수미술관은 근대문화유산에서 대한민국 현대미술의 문을 연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朴魯壽(박노수)라고 쓰인 문패를 지나 미술관 마당으로 들어서면 아담한 이층집이 보입니다. 현관의 벽돌 포치(건물 현관 앞에 지붕을 갖춘 공간)는 서양식인데 서까래를 노출한 박공지붕은 동양식으로 건축되었습니다. 1930년대 지어진 ‘절충식 문화주택’의 전형적인 형태입니다. 실내 공간에는 박노수 화백의 작품과 함께 손때 묻은 가구와 생활용품들이 보이며 작품과 소품, 공간까지 어우러진 전시가 색다른 경험을 선사합니다.
종로구립 박노수미술관에서 우리 현대미술의 시작을 보았다면, 갤러리 시몬에서는 21세기 K-아트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갤러리 시몬은 우리 현대 미술의 최전선을 볼 수 있는 아트 갤러리로 1994년 문을 연 이래 현대미술의 흐름을 보여주는 전시를 기획해왔습니다. 지금도 노상균, 배형경, 강애란 등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개인전과 다양한 그룹전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한국 현대미술의 위상을 드높이고자 국내 미술관은 물론 해외 유수의 미술관 및 갤러리들과 지속적인 교류를 다지며 역량 있는 작가들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갤러리 시몬이 자리 잡은 곳은 조선의 제21대 왕인 영조가 왕자 시절 살았던 창의궁 자리로 이곳에 갤러리 전용 건물을 짓는 과정에서 귀중한 유물들이 출토되기도 했습니다.
갤러리 시몬에서 20m쯤 떨어진 아트스페이스3도 독창적이고 혁신적인 시각으로 다양한 현대 한국미술을 소개합니다. 숫자 ‘3’은 예술가와 관람객 그리고 갤러리 세 그룹 간의 조화와 균형을 지향하는 의미합니다. 인사동에서 시작해 2018년 서촌으로 이사 온 뒤에도 다채로운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화이트 벽, 시멘트 벽을 동시에 갖춘 메인 전시실은 천정의 높이도 4m와 8m로 다양하게 이루어져 재미있는 전시가 가능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메인 전시실과 복층 구조로 연결된 공간에는 16세기 조선 시대 주거 형태를 볼 수 있는 유구전시실이 자리 잡았습니다. 건물을 지으면서 발견된 조선부터 근대에 이르는 주거 유적과 유물들을 전시하기 위한 별도 전시실을 마련한 것입니다. 덕분에 아트스페이스3는 현대미술과 옛 문화재가 공존하는 독특한 공간이 되었습니다.
2002년 서촌에 문을 연 대림미술관은 ‘일상의 예술화’를 모토로 운영하고 있어 회화나 조각 같은 순수미술보다는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사물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전시를 주로 열고 있습니다. 덕분에 사진, 영상, 설치, 일러스트, 디자인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다채로운 전시를 볼 수 있습니다. 전시 작품과 공간을 자유롭게 찍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며 뮤지엄 숍의 차별화된 ‘굿즈’들도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인기가 많습니다.
프랑스 건축가가 설계한 미술관 건물은 인공과 자연,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이루고 있는 작품입니다. 한국 전통 보자기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는 건물 전면 스테인드글라스가 눈길을 끌며 탁 트인 4층 발코니에서 바라보는 인왕산과 북한산 전망도 환상적입니다.
경복궁 동쪽 북촌 초입에 자리 잡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은 대한민국 현대미술의 새로운 중심입니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1986년)과 덕수궁(1998년)보다 늦게 문을 열었지만(2013년), 접근성과 규모 면에서 확실한 비교우위를 갖춘 덕분입니다. 담장 없이 탁 트인 공간에 건물 안팎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열린 미술관’으로 설계되어 관람객들의 만족도도 높습니다.
원래 이곳은 옛날부터 관공서들이 모여 있던 자리로 조선 시대에는 소격서, 종친부, 규장각, 사간원 등이 있었고, 해방 후에는 서울대학교병원, 국군수도통합병원, 기무사령부 등이 들어섰습니다. 이 중 기무사령부 건물을 그대로 활용함으로써, 한때 억압의 상징이었던 곳을 자유로운 예술공간으로 바꾸었다는 상징성도 확보했습니다. 크고 작은 전시실을 비롯하여 디지털정보실, 멀티미디어홀, 영화관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춘 복합예술문화센터로 한국 현대미술뿐 아니라 전 세계의 동시대 예술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아트선재센터는 북촌을 대표하는 사립미술관입니다. 미술을 매개로 동시대를 사는 우리의 삶을 성찰하고, 더 나은 삶을 위한 전망과 비전을 목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1998년 문을 연 이후 전시, 상영, 퍼포먼스와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동시대 미술 발전을 도모하고 그 결과를 대중들과 공유해왔습니다. 이곳에서 운영하던 영화관은 당시에는 보기 힘든 전 세계 예술영화를 상영해서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습니다. 음악, 문학, 무용, 패션 등 미술 인접 분야와의 협업을 통한 새로운 전시 기획도 꾸준히 이어오고 있습니다.
완공 이후 한국건축가협회상, 한국건축문화대상 등을 받은 미술관 건물도 충분히 둘러볼 만합니다. 단일 공간이면서도 자유롭게 변경이 가능한 전시장과 극장, 한옥 등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아담한 마당을 갖춘 한옥은 카페로 운영되는데, 전시를 관람한 후 잠시 쉬어가기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