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에서 북악산에 이르는 숲길은 전임 대통령들이 거닐던, 어쩌면 조선의 왕들이 걸었을지도 모를 비밀스러운 산책 코스입니다. 경복궁과 광화문 일대를 굽어볼 수 있는 청와대 전망대, 북악산 꼭대기인 백악마루, 600년 역사를 지닌 한양도성은 이 코스의 백미입니다. 울창한 숲과 빼어난 전망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비밀의 숲길을 소개합니다.
* 도보 기준
청와대에서 북악산으로 이어진 등산로는 보안이 엄중한 청와대 뒷산에 해당하는 구간이었기 때문에 그동안 일반인에게 허락되지 않은 비밀의 공간이었으나 2022년 청와대 개방과 함께 자유로운 출입이 가능해졌습니다. 2022년, 청와대 전면개방과 함께 북악산 남측인 청와대~백악정~칠궁 구간을 완전히 개방해 누구나 북악산 전체를 온전히 누리게 된 것이죠.
백악정은 북악산으로 오르는 시작점으로 춘추관 옆 담장을 따라 20분 정도 오르면 백악정에 닿을 수 있으며 칠궁에서 백악정으로 오를수도 있습니다. 춘추관이나 칠궁에서 백악정까지 오르는 길은 잘 포장되어 있지만 경사가 심한 편이라 백악정에 도착할 무렵이면 숨이 가빠질 수 있으니 편안한 신발과 복장을 추천합니다.
백악정을 지나면 자연 그대로의 숲이 펼쳐집니다. 얼마 걷지 않아 나오는 갈래길 오른쪽이 전망대로 올라가는 길, 왼쪽 길이 전망대에서 내려오는 길입니다. 대통문 직전에 전망대로 오르는 계단이 나오는데 청와대 푸른 지붕, 경복궁, 광화문 일대와 남산, 멀리 관악산까지 조망할 수 있습니다. 시원하게 뻗어나간 산자락과 넓게 펼쳐진 시가지를 보노라면 풍수지리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도 경복궁과 청와대 자리가 명당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대통문은 여름철에는 오후 6시에 폐쇄하므로 그 이전에 통과해야 북악산까지 오를 수 있습니다. 소나무가 많고 온갖 종류의 나무들이 등산로 주변으로 가득해 등산로만 제외하면 마치 깊은 산속에 들어온 것 같이 울창한 나무와 경쾌한 새소리가 발걸음을 가볍게 합니다. 대통문에서 10분쯤 걸으면 ‘만세동방 성수남극(萬世東方 聖壽南極)’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바위가 나옵니다. 누가, 언제 새겼는지 알 수 없지만 나라의 번창 임금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뜻으로 보입니다. 여기서부터 청운대 전망대까지는 가파른 계단이 이어집니다.
청운대 전망대에서 남쪽 전망을 감상한 후 한양을 둘러싼 성곽의 북쪽 대문에 해당하는 숙정문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숙정문에서 곡장까지 한양도성 성곽을 따라 올라가면 울창한 솔숲을 감상할 수 있고, 곡장에 오르면 북한산과 서울 도심, 백악마루 등 사방으로 펼쳐지는 전망이 일품입니다.
계단을 지나 능선에 올라서면 한양도성 성벽과 마주할 수 있습니다. 곧장 나타나는 청운대는 해발 293m로 푸른 구름이 모이는 곳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한양도성에서 가장 조망이 빼어난 장소로 남쪽으로 경복궁과 광화문, 세종로 일대가 선명합니다. 성벽을 넘어 반대편으로 갈 수 있도록 보행로와 계단이 마련돼 있는데 이곳에서 부암동 일대와 북한산 봉우리들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백악마루는 북악산 정상을 부르는 이름입니다. 해발 342m로 그리 높지 않지만 일대에서 가장 우뚝 솟은 봉우리입니다. 경복궁과 청와대를 감싸안으면서 서울 중심부를 내려다보고 있으며 1936년 처음 한양도성을 쌓을 때 공사구간을 97개로 나누고 각 구간의 이름을 천자문 순서에 따라 붙였는데 백악마루는 성곽의 기점이기 때문에 ‘천(天)’ 자 구간에 해당합니다.
백악마루와 청운대 중간쯤에는 붉은 점이 여러 개 찍힌 1․21사태 소나무가 있습니다. 수령 200년 된 소나무로 1968년 1월 21일 청와대를 습격하러 침투한 북한 특수부대원들과 우리 군경 간 교전 시 생긴 총탄 자국 15개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한양도성길의 대미는 창의문이 장식합니다. 백악마루를 지나자마자 길은 가파른 내리막으로 돌아서고 한양도성의 성벽과 나란히 나무 계단이 이어집니다. 백악마루 쉼터, 돌고래 쉼터 등 쉼터가 두 군데 마련돼 있으니 휴식을 취하는 것이 좋습니다.
백악마루 쉼터를 지나면 부암동 일대가 시원하게 조망되는 구간이 나옵니다. 숲 입구에 기와집 여러 채가 들어앉은 곳은 흥선대원군의 별장 석파정으로 창의문에서 일정을 마무리한 뒤에도 에너지가 충분하다면 석파정 서울미술관과 석파정까지 방문해보실 수 있습니다.
창의문은 한양도성 사소문 중 서북쪽에 있어 양주, 고양 방면으로 향하는 교통로였습니다. 서대문인 돈의문과 북대문인 숙정문 사이에 자리해 북소문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던 것을 영조 17년(1741) 때 다시 세운 것으로 사소문 중 유일하게 조선시대 문루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인조반정 때 반정군이 이 문을 지나 도성에 들어온 것을 기념해 공신들의 이름을 새긴 현판이 걸려있습니다.
창의문은 자하문이라는 별칭으로 더 많이 불리는데, 주변 경치가 개경(開京, 현 개성)의 경승지 자하동과 비슷하여 붙은 이름입니다. 청운동과 부암동을 잇는 터널이 자하문터널인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창의문 아래 1․21사태 때 침투한 북한군과 교전 중에 사망한 경찰의 동상이
서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