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 전통을 이어온 조선과 지금의 대한민국을 아우르는 동네는 어떨까요? 근대식 건물들과 골목길의 조화가 재미있는 북촌은 곳곳에 조선과 근대의 흔적들이 숨어 있습니다. 조선을 대표하는 궁궐 사이 근대를 상징하는 건축물과 미래를 향해 걸어가는 건축물에서 선조들의 마음과 그 의미를 생각해봅시다.
* 도보 기준
조선 말 개항 이후 고종은 서양 기술을 도입하여 근대적 국가로 나아가고자 노력하였는데 그중 가장 큰 변화가 군사시설입니다. 백성들을 지키기 위해 근대식 군사훈련과 무기 제조에 힘을 쓴 조선 정부는 일본과 청에 사람들을 보내 서양의 앞선 문물과 과학기술을 배워오도록 하였습니다. 그들이 귀국해 조선에 세운 공장이 신식 무기를 만드는 기기국 번사창입니다. 5개의 건물로 이루어졌던 기기국은 일제에 의해 폐쇄되었고 탄약을 제조하고 무기를 보관하던 번사창 하나만 남아있습니다.
동양과 서양의 건축양식을 절충한 건물로 중국식 벽돌과 한옥 지붕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모습은 이색적이면서 역사적으로 의미가 깊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식 무기 공장이자 근대 공장으로 나라와 백성을 지키고자 한 선조들의 염원을 느껴볼 수 있습니다. 내부 관람은 어려우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가회동 성당은 한국 천주교 역사상 첫 미사를 봉헌한 초대 교회이자 박해의 흔적을 간직한 곳입니다. 1949년 처음 세워진 옛 성당의 건물은 2010년 건축학과 출신이었던 송차선(세례자 요한) 신부의 지휘 아래 재건축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전통한옥 사랑채와 현대식 성당의 조화로운 분위기가 무척 평화로운 것이 특징입니다. 도로 쪽에 나지막한 한옥을 배치하고 그 안에 사제관과 성전을 숨겨두었는데 그 이유는 박해 때 숨어서 미사를 드리던 초대교회의 모습을 반영한 것이라 합니다. 2층 대성전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과 짙은 황토색 목재 벽이 어울려 아늑하면서도 경건함이 느껴집니다.
언제든 부담 없이 머물다 갈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던 송 신부의 뜻에 따라 교회의 문턱을 완전히 없애고, 사람들의 발길이 머무는 공간으로 만들어 종교를 떠나 누구든 방문할 수 있습니다. 월요일과 공휴일은 휴무로 인해 성당을 개방하지 않습니다.
LG 상남도서관은 국내 최초의 ‘디지털 도서관’이자 세계 최초의 ‘책 읽어주는 도서관’입니다. LG그룹 설립자인 구자경 명예회장이 기증한 사저를 기반으로 1996년 개관해 우리나라 과학기술 연구와 자료를 공급하는 곳으로 발전과 미래를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국내에서 입수하기 힘든 해외 과학기술 논문을 디지털화하여 인터넷을 통해 무료로 제공하고 있으며 2층 세미나실은 소규모 과학기술 분야 학술 모임장으로 무료 대여하고 있습니다. 해당 세미나실은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 가능하니 과학기술에 관심이 많다면 최신 논문을 보고 토론을 할 수 있습니다.
책 읽어주는 도서관은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공간으로 LG상남도서관 개관 10주년을 맞아 구축되었습니다. 시각 장애인을 위해 신간 도서부터 베스트셀러, 신문 기사, 영화 시나리오 등 매달 50여 권의 새롭고 다양한 책을 무료로 들을 수 있습니다. 도서관 회원가입 신청 후 복지카드 인증만 받으면 휴대폰을 통해 언제 어디서든 도서관에 접속해 음성으로 책의 내용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곳은 오직 장애인을 위한 무료전자도서관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되어 건물 내부를 관람할 수 없습니다.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는 창덕궁과 주변 한옥들과의 조화를 고려해 기왓장 느낌의 전돌로 만들어졌습니다. 외벽은 자연과의 상생을 위해 푸른 담쟁이덩굴로 장식했고, 폐쇄적인 외관과는 대조적으로 한옥의 구조를 적용한 내부는 막힘없이 연결됩니다. 김수근 건축가의 건축론인 ‘공생’이 잘 드러난 건축물로 경사진 지형의 특성을 그대로 보존해 반 층씩 높인 스킵 플로어 구조와 공간감을 극대화해 층의 경계를 모호하게 설계한 모습은 마치 미로와 같습니다. 국가와 장르에 국한되지 않은 현대 작품들은 보는 이의 위치에 따라 풍경이 각기 다르게 다가옵니다. 실제로 경험하지 않고서야 그 감흥을 느끼기 어려우니 색다른 시각적 경험을 느끼고 싶다면 방문을 추천드립니다. 다만, 공간이 좁고 위험해 10세 이하 어린이의 입장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우리 민족 최대의 독립운동이었던 3.1운동의 시작을 알고 싶다면 천도교중앙대교당을 놓칠 수 없습니다. 1918년에 시공하여 1921년에 완공된 천도교의 대교당은 천도교의 종교의식 외에 각종 정치 집회, 예술 공연 등 일반 행사가 개최된 역사적인 공간입니다.
바로크풍의 탑 지붕을 한 붉은 벽돌 건물의 고풍스러운 자태는 한때 명동성당, 조선총독부 건물과 함께 서울 3대 건물로 꼽혔습니다. 독립운동 기금을 모으기 위해 대교당 건축이란 명분을 앞세워 공사를 했고, 건축비 일부는 3.1 운동의 중심단체 활동을 위한 독립자금으로 사용했습니다. 한국 근대건축에서 보기 드문 분리파 양식의 건축 성향은 독일인 건축가의 영향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건물은 전체적으로 화강석을 사용했고, 건물의 몸체에는 내부 기둥이 없어 강당 형식의 집회실로 되어 있습니다.
천도교 중앙대교당은 어려운 시절 민족의 여론을 대변하는 민간 의사당이자 민족운동의 진앙지로 우리 근현대사의 호흡을 같이 해온 역사의 현장입니다. 수많은 이들의 절실한 마음과 독립을 향한 의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