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을 중심으로 동쪽을 북촌, 서쪽을 서촌으로 부릅니다. 북촌이 고관대작들의 고래등 같은 기와집들이 즐비한 곳이었다면, 경복궁 서쪽 서촌은 상대적으로 소박한 문화를 즐겼던 서민 동네였는데요. 이런 분위기는 일제강점기를 거쳐 광복 이후로도 이어졌고, 지금도 서촌 일대에는 옛날 서민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장소들이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 도보 기준
금강산도 식후경이니, 뭐라도 든든히 배를 채우고 본격적인 서민 문화 탐방을 시작하려면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가 딱입니다. 지하철 3호선 2번 출구로 나와서 20미터만 걸으면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라는 간판과 함께 청사초롱 달린 골목이 이어집니다. 원래 이곳은 금천교 시장으로 불렸으나, 2011년 종로구가 이 지역 일대를 ‘세종마을’로 명명하면서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로 바뀌었습니다. 실제로 이곳은 세종대왕이 태어난 마을로 세종대왕은 아버지 태종이 아직 왕자이던 시절, 경복궁 서쪽 사저에서 태어났습니다.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는 이름과 달리 왕이나 상류층보다는 서민들의 문화가 살아있는 골목입니다. 금천교 시장 시절부터 수십 년을 이어온 노포와 청년들이 새로 오픈한 핫 플레이스들이 저마다 개성 있는 먹거리를 내세우며 사람들의 발길을 잡는 공간입니다. 이제는 메인 골목뿐 아니라 구석구석 샛길에도 맛집들이 들어서 골라 먹는 재미가 있습니다.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가 서민들의 식문화를 보여준다면 일제강점기에 문을 연 보안여관은 옛 서민들의 주거문화를 알려줍니다. 1930년대에 문을 열었다고 알려진 보안여관은 여행자의 숙소이자 문인들의 아지트였습니다. 20대 초반의 젊은 시인 서정주가 이곳에 머물면서 김동리, 오장환, 김달진 등과 함께 동인지 <시인부락>을 만들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80년 넘게 서민들의 숙박시설로 운영되던 보안여관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전시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입구의 낡은 간판을 시작으로 작고 허름한 방과 삐걱거리는 계단, 타일이 벗겨진 공동 욕실까지 세월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이런 풍경과 어우러진 전시는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무료로 1, 2층을 오가며 자유로운 관람이 가능하며 구름다리로 연결되는 옆 건물 ‘보안 1942’는 카페와 서점, 게스트하우스 등 복합문화공간으로 운영 중입니다.
대오서점은 1951년에 문을 연 헌책방입니다. 책이 귀하던 시절, 헌책방은 서민들이 보고 싶은 책을 저렴한 가격에 사볼 수 있는 문화공간이었죠. 이후 60년 넘게 책방으로 한 자리를 지켜오던 대오서점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카페 겸 문화공간으로 운영 중입니다.
오래된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면 책이 잔뜩 쌓여있는 자그마한 카운터가 나오고, 사방 벽을 가득 채운 옛날 책 사이로 서점의 옛 모습을 담은 사진들도 보입니다. 살림집으로 쓰던 작은방과 거실, 장독대가 놓여 있는 아담한 마당도 사진 속 옛 모습 그대로입니다. 이런 풍경이 한창 유행을 타던 레트로 감성과 맞아 떨어져 가수 아이유의 앨범 커버 촬영 장소와 방탄소년단(BTS) 리더 RM이 방문한 장소도로 유명합니다.
대오서점 맞은편 골목 안쪽에 자리 잡은 통인한약국은 지역 주민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동네 한약방입니다. 두 명의 전문 한약사가 의기투합해 문을 열고 몇 년 만에 서촌의 명물이 되었죠. 이제는 동네 사람 누구나 편하게 들러 한방차를 마시고, 건강 상담도 받고, 편하게 담소도 나누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작은 마당을 지나 집안으로 들어서면 인삼과 감초, 작약, 당귀 등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한약재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카운터를 겸한 다실에 앉아 쌍화차나 십전대보탕을 마시면 간단한 무료 건강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본격적인 상담은 이곳에서 설문을 작성한 후 지하 상담실에서 이루어집니다.
통인한약국의 처방원칙은 ‘간이박략’으로 요약됩니다. “처방은 간결하게, 복용은 쉽게, 가격은 소박하게, 절차는 간략하되 세심하게”라는 뜻으로 병원이 없던 시절, 우리 선조들의 건강을 책임졌던 동네 한약방의 마음을 담았습니다.
통인시장은 서촌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 시장이자 서민문화를 상징하는 공간입니다. 주말이면 전국에서 ‘엽전 도시락’ 을 경험하고자 통인시장을 방문합니다. 엽전 도시락은 엽전 꾸러미를 산 뒤, 미니 식판을 들고 시장을 누비며 엽전으로 먹거리를 구입하는 통인시장만의 특별한 체험입니다. 엽전 몇 닢으로 떡볶이와 튀김 같은 시장표 간식들을 구매하며 조선과 대한민국의 서민문화를 한꺼번에 경험할 수 있습니다.
통인시장 안에는 이름난 맛집과 추억의 물건을 파는 가게들이 즐비해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시간을 보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