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제일의 법궁’인 경복궁과 이웃한 서촌은 여전히 옛 모습들이 남아있습니다. 덕분에 누구나 조선 시대로 떠나보는 시간 여행이 가능합니다. 조선의 왕이 되어 곤룡포를 입고, 궁중 별식을 먹고, 사직단 제단과 황학정 국궁장까지 조선 국왕의 행차를 따라가 보는 여행 코스를 추천해드립니다.
* 도보 기준
조선 시대 국왕의 하루 일과는 의관을 갖추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조선의 국왕은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옷을 입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국왕의 의상은 평소 업무를 볼 때 입는 곤룡포입니다. 곤룡포는 가슴과 등, 양어깨에 용무늬를 금실로 수놓은 둥근 천을 덧붙인 옷으로 보통 붉은색이지만 때에 따라 푸른색 곤룡포도 입기도 하였습니다. 여기에 익선관(두 개의 날개가 뿔처럼 솟은 모자)을 쓰고, 옥대(옥으로 장식한 허리띠)를 차고, 목화(관복에 신던 가죽신)를 신으면 조선 국왕의 일상 업무복이 완성됩니다.
서울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4번 출구 앞 사직로 일대에는 곤룡포를 포함한 여러 가지 한복을 빌려주는 한복대여점들이 있습니다. 업소마다 다양한 한복을 준비해 놓았는데, 곤룡포와 익선관, 목화뿐 아니라 왕이 사냥이나 능행할 때 입는 융복까지 갖춘 곳도 있습니다. 왕비가 평소 입는 옷의 대여와 그에 맞춘 헤어스타일링도 가능합니다.
곤룡포를 입었으니, 이제 궁궐로 향해 볼까요? 첫 번째 목적지는 경복궁의 정전(중심 건물)인 근정전입니다. 근정전은 궁궐의 중요 행사가 열리던 장소로 신하들이 국왕께 조례(아침 인사)를 드리는 조회가 이루어졌던 곳이기도 합니다. 조회는 대다수 신하들이 참여하는 조참과 소수의 고위 관리들이 참여하는 상참으로 나뉘는데요. 보통 한 달에 4번 정도 열리는 조참은 근정전에서, 거의 매일 열리는 상참은 왕의 업무 공간인 사정전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조참이 열릴 때는 새벽같이 입궐한 신하들이 자신의 벼슬에 맞는 품계석에 서서 국왕께 사배례(4번 절하는 의식)을 올리고 어명을 받았습니다.
근정전 월대(중요 건물 앞의 넓은 기단) 위에 서면 품계석이 줄지어 선 조정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조선 시대 국왕이 보던 풍경도 이와 비슷했을 겁니다. 궁궐을 제대로 보는 방법 중 하나는 왕의 시점으로 둘러보는 것인데요. 근정전 월대도 왕의 시점을 경험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근정전 안에는 화려한 단청 아래 국왕의 옥좌가 보이고, 가끔 근정전 내부를 개방하는 특별관람도 실시되는데, 경복궁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하실 수 있습니다.
조회 뒤에 조강(아침 공부)까지 마친 국왕은 아침 수라(아침 식사)를 들었습니다. 왕의 수라는 근정전 인근의 궁궐 부엌 소주방에서 만들어졌습니다. 궁궐에는 수많은 이들이 머물렀기 때문에 부엌도 여럿이었는데, 그중 소주방의 규모가 가장 컸습니다. 소주방은 왕과 왕비의 식사를 만드는 내소주방과 궁중 잔치를 준비하는 외소주방, 후식과 별식을 마련하는 생과방 등으로 나뉘고, 생과방은 궁궐 안살림을 담당하는 6처소 중 한 곳으로 ‘생물방’, ‘생것방’으로 불렸습니다.
일제에 의해 철거된 후 2015년에야 복원된 소주방에서는 매년 상반기(4~6월) 하반기(9~11월)에 걸쳐 ‘생과방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조선왕조실록>의 내용을 토대로 실제 조선 국왕이 즐기던 궁중병과와 궁중약차를 맛볼 수 있습니다. 아홉 가지 한약재로 만든 떡인 ‘구선왕도고’를 비롯해 약과와 호두정과, 매작과 등 궁중병과와 함께 강계다음과 삼귤다, 감국다, 제호차 등 생소한 이름의 궁중약차도 제공됩니다. 구체적인 메뉴와 진행 방식은 시즌마다 조금씩 달라지니, 자세한 내용은 한국문화재재단 홈페이지를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왕실의 살림살이를 제대로 살펴보기 위해서는 경복궁 안에 자리 잡은 국립고궁박물관을 추천드립니다. 이곳에선 국왕의 옥좌에서 궁궐 지붕의 잡석, 왕의 전용 변기인 매화틀에 이르기까지 왕실 사람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유물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지하1층에서 2층에 이르는 전시실에는 태조 이성계의 어진(왕의 초상화)부터 조선의 마지막 임금 순종의 어차까지 조선 국왕과 관련된 유물까지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정문으로 들어서면 바로 2층으로 연결되며 여기서 시작하는 관람 루트는 1층과 지하 1층으로 이어집니다. 전시 구조가 비교적 단순하기 때문에 발길 닿는 대로 가도 중요 전시물들을 놓칠 염려가 없습니다. 2층의 안내데스크에서 안내 팸플릿을 챙기고, 바로 옆 ‘조선의 국왕실’부터 관람을 시작해 7개의 전시실을 차례로 돌아볼 수 있고, 전시실마다 수준 높은 조선 왕실 문화를 보여주는 유물들이 가득하니, 충분히 시간을 갖고 둘러보는 것이 좋습니다.
조선 국왕은 구중궁궐 안에 머물렀지만, 때로는 궐 밖으로 행차를 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행차는 종묘나 사직에 제사를 지내러 가는 것이였습니다. 유교 왕국 조선에서 종묘와 사직은 국가 그 자체였습니다. 종묘는 역대 국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신 사당을, 사직은 토지신과 곡신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전하, 종묘사직을 보전하옵소서~!”라는 대사가 사극에 단골로 등장하는 까닭이기도 합니다. 경복궁에서 도보로 20분 거리에 있는 사직단은 사직에게 제사를 지내는 제단으로 사직단의 중심에는 건물이 아니라 텅 빈 제단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사직단(社稷壇)’이란 글자가 선명한 정문을 지나면 야트막한 담장 사방에 홍살문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 안에 또 하나의 담장이 있고, 거기도 역시 사방에 홍살문을 두었습니다. 왕릉에도 하나만 세우는 홍살문이 8개라니, 이곳이 얼마나 신성한 장소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곤룡포를 입고 제단 옆에 서 나라와 백성을 위해 절을 올렸던 옛날 임금의 마음을 헤아려 보는 것은 어떨까요?
활쏘기는 조선 선비들의 필수 교양이자 왕실의 가전 무예였습니다. 일찍이 태조 이성계는 멀리 떨어진 적장의 투구 끝을 명중시킬 정도로 활솜씨가 뛰어났습니다. 태조의 뒤를 이은 왕들도 활솜씨가 뛰어났을 뿐 아니라 신하들의 활쏘기를 구경하는 것도 즐겼다고 합니다. 때로는 신하들과 함께 활을 쏘는 ‘대사례’를 열기도 했었습니다.
황학정은 대한제국 시기 고종 황제가 세운 활터에 자리 잡은 정자입니다. ‘황학정’이란 고종이 황제가 입는 황색 곤룡포를 입고 활을 쏘는 모습이 마치 황금색 학과 닮았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으로 원래는 경희궁 안에 있었는데, 일제가 경희궁을 훼손하는 과정에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습니다. 이후 일제는 전국의 활터를 폐쇄했지만, 다행히 황학터 활터가 살아남아 우리나라 전통 국궁의 명맥을 오늘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